저번 주 토요일날  강원도 원주로 갔다. 친한 분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원주'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그 곳은 나의 제 2의 고향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고향을 찾아 보려고, 열심히 페달을 밟아서 왔는데, 나의 무실동이 없었다.     

마을은 계획도시로 되어 버려서 예전의 모습은 흔적도 없고,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큰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는 너럭바위에 처억 걸쳐놓으면 노래 몇 번 부르고 나면 금방 말랐다. 빨래가 말라서 햇살 가득한 빨래를 집으로 이고 오는 길도 안보이고, ,너른 과수원 길, 자주 들러던 포장마차 등은 보이지 않고, 낯선 도시만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설레던 마음은 눈물이 되어 가슴을 적신다.  

자전거를 처음 배운 날, 혼자 연습하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언덕받이를 오르다가 갑자기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났다.

세워 보려고 했지만, 잘못하다 길옆의 낭떠러지로 추락할까봐. 앞의 밭으로 돌진했다.

자전거는 밭으로 잘 넘어갔건만. 나는 그만 울타리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리고 말았다. 

내려오려고 용을 써보았지만 꼼짝도 못했다.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이 별 일이 다있다면서 매달린 나를 업고 왔다.

지금 생각하면 친정아버지의 선견지명이 있어서다. 원주는 춥다면서 군용잠바를 그 전날 보내 주는 바람에 못에 옷만 걸려서 나는 하나도 다치지 안했다.

그 잠바는 하루도 못가서 폐기처분 되었다.  

그날 나는 무실동 사람들을 실컷 웃겨주었다.

무실동에서는 아침을 해먹고 나면 점심은 바깥에서 먹는 다. 아니 먹을 수가 없다. 

누군가 고추장을 담그면 모두 불러서 큰 대야에 밥을 왕창 비벼서 함께 먹고, 또 누가 제사를 지내면 그 날 점심은 제삿밥이었다.

돌이다, 생일이다 하면서 거의 점심을 동네 어른들과 먹다보니, 동네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가족이 되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눈만 오면 우리 집으로들 왔다.

'새댁 눈 온다고' 하면서 , 어떤때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까지 오시곤 했다. 

내가 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모두가 알아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플라스틱 지붕을 이은 곳에 못이 있는 줄도 모르고, 눈온다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다가 못에 머리를 크게 찔려서 피를 흘렸다.

하얀 눈위에 빨간 피가 쏟아지는데도 뛰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혹시나 내가 방에 있다가 눈을 못볼까 싶어서 동네 어르신들은 눈만 오면 바쁘게 내게로 달려왔다. 

고향간다고 덜떠서 뒤도 안보고 내려왔는데, 살면서 이 곳이 마음에 박힐 줄은 정말 몰랐다.  

사는게 뭐시라고, 뭐시라고.....

이제서야 시간과 여유가 생기고 나니, 무실동을 찾아왔건만, 사람도 없고 마을도 없어졌다.  

그때의 새댁이 벌써 60이 넘었으니, 할머니들은 당연히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다음에 ' 처럼 나쁜 말이 없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바보처럼 다음을 얘기하다니! 

보고 싶은 사람, 은혜갚을 사람은 즉시 보아야 한다. 


무실동은 이제 내 가슴속에만 존재할 것이다.